2009년 06월 21일
2009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정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고, 500만에 이르는 국민들이 분향소를 다녀갔으며, 정권은 시민들이 만든 분향소를 철거했다. 얼마 후엔 교수들이 일어나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뒤이어 종교계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들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국론은 전에 없이 극한까지 양분되었고, 때문에 국정은 어느 하나 제대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2009년, 사회는 우리 대학생에게 더이상 무관심과 무지라는 변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를 요구한다. 그러니까 이제는 "난 정치에 관심없어"라거나, "난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 사람이 잘 살게 해줄 것 같아서 뽑았어"라는 말 따위를 입에 담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 나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내 할일 하기도 바쁜 사람이었고, 내 할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 혹은 내가 아닌 모두를 위한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내 할일 제대로 하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고, 내가 내 할일을 제대로 하다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ㅡ라는건 뻥이고, 단지, 귀찮았다. 당장 나에게 밥 한숟갈 떠먹여주지도 않을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 귀찮았고, 내가 뭔갈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분명 변명이지만, 나는 아직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나를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ㅡ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어느 정도는 유효한 말이다.ㅡ그래서 나는 나와 관련있지 않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결국 그것은 무지였으며, 그 무지로 인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도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버렸다. 박정희가 무엇을 했든, 전두환이 무엇을 했든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이었고, 김대중이, 노무현이 무엇을 했든 그것은 그들의 일일 따름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볼 시간에 국영수를 공부했고, 아무 생각없이 술을 마셨으며, 아무 생각없이 보여주는 길을 걸었다.
이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아무 생각없이 보도사진부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없이 촬영부장을 맡았고 거의 반억지로 집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신문에서 보는 것만이, 티비에 나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5월 1일이 노동절이라는 사실조차,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그리고 다들 별일 없이 지나갔다고 믿는 2005년도조차 평균 하루에 집회가 하나도 없는 날은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버스를 지체시키는 집회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나서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내 할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고, 내 할일 하기도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23일, 친구가 날 깨웠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죽었다고 확인해보라고 아침에 전화를 했다. 노무현을 그리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고,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자세히 모르지만, 기가막혔고 가슴이 철렁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내 생애를 통해 겪은 얼마 안되는 충격 중 하나였다.ㅡ솔직히 가장 큰 충격이라곤 못하겠다ㅡ며칠동안 수많은 기사들이 난무했고, 수많은 소리들이 인터넷을, 방송을 뒤덮었다. 아는 친구는 눈물을 흘렸고, 피디님들은 침통해했으며, 작가님은 검은 옷을 입고 출근하셨다.
이러한 와중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향하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덕수궁 앞에 운집했으며,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좌절과 울분을 토하는 상황에서 첫날 충격의 여운으로 아린 가슴을 쓰다듬으면서도, 나는 아직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말씀대로, 친구 말대로 자기 친척이 죽어도 저렇게는 안울텐데라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어떤짓을 했길래 전직 대통령이 자살이란 선택을 하게 만드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권력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빈틈을 찾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는 점도 생각해보니 그럴듯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신일이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나때문이라는 것을.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것도 나때문이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도 나때문이고, 용산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가 아직까지 묻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때문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이었다.
얼마전 한국 현대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4.19니, 5.18이니, 6.10운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보았다. 그 때 거리로 나왔던 학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거리로 나왔으며,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위장취업까지 해가며 노동운동을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 때는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때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대학생 수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로 적었고, 사회자체가 변혁을 필요로하는 분위기였다. 말도 안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것은 두말 할것도 없이 반민주주의였고, 독재였다. 대학생들이 하면 되었던 것은 오로지 '반대'뿐이었다. 프랑스 69혁명이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기치로 일어났던 것처럼, 그 당시 대학생들도 '민주주의가 아닌 모든 것을 반대한다'라는 기치 하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은 확실히 그때와는 다르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좋은 민주주의와 나쁜 민주주의의 대결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다. 나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렇게 사람들을 호도한다. 게다가 그들에게도 명분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나름대로의 정의도 있다. 박정희 시대와는 다르다. 박정희는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고 재선, 삼선을 거쳐 유신을 시도했지만, 이명박은 전국민이 뽑아준 사람이고 재선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 박정희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있긴 하지만,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소한 지금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기라도 하니까.
때문에 지금 사회는 그 때보다 더 대학생들을 필요로한다. 그 때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기를 요구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하길 요구한다. 그리고 더 치열하게 앞으로 나오길 요구한다.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시대의 양심은 대학교수도 아니었고 언론도 아니었고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었고, 대학생이었다. 대학생만이 양심이었다.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자신을 바쳤던 이한열 열사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양심이 눈감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니, 양심자체가 희미해져버렸다. 사회에 눈감고 자기 눈앞의 이익만을 불을 켜고 달려들다보니, 사회는 사회대로 썩어들어가고, 개인은 개인대로 찌들어져가고있다. 더이상 대학생은 양심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니다. 단지, 취업 준비생일 뿐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집회에 나가고 이명박 독재정권타도를 외쳐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법이다. 모두가 이한열 열사가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선 알아야하고, 그리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아야 하고, 내가 여기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한다. 데모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사회봉사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공부를 해서 사실을 알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방법에 목맬 필요는 없다. 어떤 활동이든, 다양한 방법이 좋다.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곳에서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고, 우리의 의지로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전에, 일단은 알아야 한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난 잘 모르니까", "관심이 없으니까"라는 말은 이제 변명조차 되지 않는다. 이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분명히 알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가진채, 행동해야한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정도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난 잘 몰라"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말자.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당한 것도 아니며, 부끄러운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내보이며 자랑하는 꼴은 하지 말자. 부끄러운 줄 알아야, 앞으로 갈 수 있다.
난 여전히 내 할일 하기도 바쁘고, 내 할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 언제쯤 되어야 내 할일도 제대로 할지조차 알 수 없다. 아마 10년쯤 지나도 난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그때도 나는 내 할일 하기도 바쁘고, 내 할일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내 할일은 토익 점수 올리는 것이나, 학점 좀 더 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지금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남겨주신 가르침이다.
# by | 2009/06/21 14:51 | 생각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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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이런 좋은 글 읽게 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기할일도 못하는 애송이가.
민주주의 위기라고?
북한애들 어떻게 사는지 좀 보고 그런소릴해라.
북한애들이 볼때는 지금의 우리는 천국에 사는것처럼 보일테니까.
위기 같은 소리하고 있네.